경악스러웠던 프로듀스48 3개월의 이모저모
의 마지막을 앞두고 그간 <프로듀스48>을 달려오면서 겪었던 것, 봐왔던 것들을 가볍게 나열해보려고 합니다. 물론, 가볍게 나열하겠지만, 내용까지 가볍진 않을 겁니다.
전 살면서 이렇게 엉망진창인 판도는 처음 봤어요. <프로듀스101> 시즌1을 가볍게 달려서 그런가 싶어 당시 하드하게 달렸던 사람들에게 물어보니까 '이 정도로 미치진 않았다'라고 말하더군요.
이번 개판(!)의 시작은 아예 엠넷에서 깔아줬어요. 48그룹과 합작. 단순히 한일 합작이어도 욕 먹을 텐데, 하필이면 일본의 우익 세력과 관계가 깊은 아키모토 야스시와 합작을 하다니,
욕을 안 먹을 수가 있습니까? 소식이 나오는 순간부터 비난이 난무했고 이전 프로듀스 시리즈를 화제로 이끈 원동력이었던 다수의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언급 금지' 공지를 내렸습니다.
너무 싸움이 많이 나니 어쩔 도리가 없었던 거에요. 결국, 딱히 언급 금지가 없었던 사이트에서도 <프로듀스48>에 대한 글을 올리는 게 꺼려지는 상황마저 발생합니다.
글을 올리면 "이거 그 우익 그룹인가랑 같이 하는 방송 아닌가요?"라는 댓글이 항상 달리다시피하는데, 눈치 보여서 올릴 수가 없죠.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남은 사이트 중 가장 큰 곳은 역시나 디씨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다채롭게 영향력을 지닌 사이트는 디씨입니다.
방송에 48그룹의 맴버들이 참여하므로 디씨의 기존 일본 연예인 관련팬들이 참전(?)하는 건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자칫 다른 사이트들도 디씨 프로듀스48 갤러리의 멀티가 되어버릴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어버렸습니다.
비공개 사이트인 더쿠마저도 하필이면 방송이 시작하기 직전에 가입을 오픈하는 바람에 디씨 갤러들이 대거 침투, 현재까지 11만 개의 글이 작성된 카테고리에 지옥도를 만들어놨습니다.
더쿠도 디씨 만큼은 아니어도 파이팅이 넘쳐흐르는 사이트기 때문에 카테고리는 그야말로 전쟁터가 되었지요.
'혼모노'라는 단어를 아십니까? <너의 이름은> 개봉과 동시에 '일본 대중문화에 극단적으로 빠져 국적을 잊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팬'의 의미를 지닌 '혼모노'란 단어가 널리 퍼졌지요.
'혼모노'는 '진짜배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단어로, 보통 '진짜배기'라고 하면 긍정적으로 사용될 때도 있습니다만, 혼모노는 오로지 부정적인 의미로만 소모합니다.
이번 <프로듀스48>에 깊은 관심을 가진 일본인 연습생 팬들이 이 혼모노 프레임에 갇히고 말았는데, 그냥 일본인 연습생을 지지한다는 이유만으로 '혼모노'라며 비하당하곤 했습니다.
물론, 진짜 국적이고 개념이고 다 잊어버리고 전방위 사격을 가하는 '일뽕'들도 실재했지만,
그들에게 혐오감을 드러내는 와중에 피해를 입은 평범한 일본인 연습생 팬들도 존재했어요.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카오스가 시작되었습니다.
혼모노가 아닌데 혼모노 몰이를 당한 팬들은 조용한 와중에, 엉뚱하게도 진짜 혼모노들이 이상한 단어를 창조해냈습니다. '한모노'.
전 처음엔 '한국 스타일의 기모노'를 얘기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혼모노면 너희들은 한모노가 아니냐는 식의 괴상한 단어 조합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한국인 연습생의 팬들을 '국뽕'으로 몰고 혼모노와 어감이 비슷한 한모노란 단어를 만들어낸 거에요. 물론 통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하게 혼모노로 몰린 이들의 대다수가 조용히 있는 상황이었던 터라 한모노란 단어를 쓴다는 것 자체만으로 본인이 혼모노라는 걸 인정하는 꼴이었거든요. 오히려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버렸죠.
그런데 여기서 한모노를 외치던 이들은 놀랍도록 효과적인 탈출구를 찾아냅니다. 바로 '위스플'입니다.
이전부터 내정픽이니 뭐니 하면서 위스플톤을 비아냥으로 삼았었는데, 이걸 위스플으로 줄이고 본격적인 공략을 시작했어요.
대중은 권력 관계의 유착을 싫어하고 특혜를 싫어합니다. 당연하지요. 안 그래도 우리나라는 기업, 권력자의 유착과 특혜 등으로 지옥에 떨어진 뒤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 하는 상황인 걸요.
덕분에 대기업인 CJ가 자신들과 관련이 있는 회사들을 총괄적으로 밀어주기 위해서 프로듀스 시리즈를 만들었고, 실제로 그 회사 소속 연습생들이 큰 이득을 얻고 있다는 '위스플 실재론'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여러 미디어의 기사화 등으로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까지 올랐던 위스플은 갓코어팬이 생기기 시작하던 한국인 연습생들을 완전히 박살 냈습니다. 일찍부터 팬이 붙었던 연습생들은 간신히 현상유지를 했지만,
그렇지 않은 연습생들은 점차 하락. 본격적으로 일본인 연습생의 전성시대가 열렸고, 그 현상은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시점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민감해하는 부분을 직접적으로 때린 '신의 한 수'라고 할까요. 저도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전엔 혹했었지요.
억지스럽고 황당한 프레임이지만, 위스플 실재론엔 영리한 구석도 여럿 보입니다. 중소 기획사들 사이엔 살아남기 위해서 구축된 희미한 커넥션 같은 게 있었던 게 사실이고,
그런 회사들 중 일부만 CJ와 연계가 있어도 묶어서 때리기 딱 좋거든요. 본래 '위스플톤'이었던 것을 '위스플'로 스톤 뮤직을 살짝 빼서 줄인 것도 상당히 유효했습니다.
전면에 나서는 회사가 네 개나 되면 이상하게 느껴질 게 뻔했으니까요. 사실, 스톤 뮤직이야말로 엠넷과 직접 관계가 있는 회사였음에도 대중에 널리 알려진 회사가 아니란 점,
참여 연습생이 많다는 점을 고려해 빼기로 결정한 모양이에요. 역시 영리합니다.
위스플이 화제가 된 이후, 리셋되고 나서 새롭게 시작된 투표 속보는 아주 충격적이었습니다.
위스플 안에 들어가 있는 연습생들 대다수가 순위 폭락을 겪고 탈락 위기에 처했을 뿐만 아니라 이른바 말하는 '혼모노'들이 강력하게 지지하던 연습생들이 아닌 그들이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연습생들이 최상위권에 위치했기 때문이에요.
미야자키 미호와 타케우치 미유는 '미미 자매'로 엮여서 얻어맞았는데, 그 주된 이유도 '얼굴'이었기에 <프로듀스48> 관련 커뮤니티는 24시간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특히 이 시점에서 타케우치 미유의 팬들이 저지른 실수들이 드러나면서 그녀는 거의 공공의 적이 되다시피했어요. 그리고 이 싸움의 불똥은 단순히 연습생들만이 아니라 방송 전체에 튀었습니다.
프로듀스 시리즈는 언제나 팬들의 '영업'이라 불리는 열정적인 홍보 행위와 방송 클립들이 인터넷에 공유되면서 새로운 팬들이 생겨나는 선순환을 거듭해왔지요.
그런데 이번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팬들이 예쁘게 포장한 영업이나 무대 영상 등을 보고 관심이 생겨서 정보를 찾으러 커뮤니티에 온 신규팬들은 사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싸움에 질려서 대부분 도망쳐버렸습니다.
싸우다가 또 팬들끼리 재미있고 좋은 거로 달리기도 하는 단짠이 있어야 재미가 있는 건데, 팬들이 재미있고 예쁜 것들로 화제를 돌리려고 해도 '그런 거 하지 마라',
'오글거린다', '별로 모르겠다'는 식으로 끊어버린 뒤 다시 싸움판을 벌입니다. 관리자가 나서서 중재해봤자, 조금 지나면 또다시 엄청 난 싸움이 벌어집니다.
결국, 열심히 시간 들여서 다른 곳에 홍보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팬들도 현자 타임을 맞이하고 탈주해버렸습니다. 3차 순위 발표에서 그런 대참사가 벌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안 그래도 일본인이 참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장벽이 있는 마당에 위스플까지 끼얹어 판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놨고,
24시간 싸우면서 신규팬의 유입을 막은 뒤 기존팬들도 전부 도망치게 했어요. 도망친 팬들은 소소하고 작게 달리는 커뮤니티에서 조용히 팬들끼리 지내거나 아예 손을 끊어버리거나 둘 중의 하나를 택했습니다.
이렇게 혼돈이 가득한 상황에 또 하나의 이변이 발생하니, 시타오 미우의 이토 히로부미 관련 에피소드들입니다.
자신의 고향을 홍보하기 위한 존재로 이토 히로부미를 선택한 시타오 미우의 과거에 인터넷이 들끓었고(심지어 요시다 쇼인의 이름까지 나왔습니다),
안 그래도 거대했던 '우익 그룹이 참여한 방송'이란 장벽을 더욱 더 거대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시타오 미우 건은 다른 일본인 연습생의 팬들에게도 굉장히 배척받았는데, 간신히 희석되던 우익 그룹이란 이미지가 다시 확고해졌기 때문입니다.
일부 연습생이 미타마 축제에 가고 싶다고 했던 과거까지 끌어올려지는데 싫어하지 않을 수가 있나요.
의 판도는 마지막 방송을 앞둔 지금도 경악스럽습니다. 이미 기사화되어 아는 분도 있겠지만, 지금 각 연습생의 팬들이 모여서 투표 이벤트를 열고 있어요.
자기들 연습생에게 투표했다는 인증을 해주면 추첨을 통해 경품을 준다는 이벤트입니다. 연습생들 간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라이트 팬이 10명 있어도 코어팬 1명이 쓰는 돈을 이길 수 없는 게 현실. 이미 코어팬이 엄청 나게 많아진 연습생들은 그들이 모금한 돈으로 이벤트를 크게 열어서 더욱 더 많은 표를 받아 안정적으로 데뷔할 수 있습니다.
반면 팬 자체가 얼마 없거나 라이트팬만 많고 코어팬이 부족한 연습생들은 이벤트를 크게 열 수 없으므로 데뷔권에서 멀어져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벤트 규모가 천만 원 단위까지 가버린 상황이라 '금권선거'란 비아냥을 듣고 있고, 이제 데뷔한 연습생들은 전부 돈으로 데뷔했다는 소리를 듣게 생겼어요.
이렇게 간략하게 큼직한 것만 정리해도 이번 시즌의 판도가 엉망진창인 이유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실력 버리고 비주얼만 극한으로 끌어올려서 참가자를 받았단 얘기가 돌았었는데,
그런 한국 일본 할 것 없이 비주얼 좋은 거로 칭찬받던 연습생들이 대거 탈락. 심지어 그 와중에 실력 있는 연습생들도 상당수가 탈락.
최후의 미지수랍시고 등장한 게 천만 원 단위의 경품 배틀. 아마 <프로듀스48>은 여러 의미에서 절망적인 시즌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 하나가 있는데, 12화 생방송의 문자 투표는 100원을 내는 유료 투표 아니던가요?
문자 투표를 가지고 경품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건 '도박'에 해당하는 행위가 됩니다만, 이에 대한 기사가 거의 없는 모양이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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